차 례

Ⅰ.서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국 법원에서 일본을 상대로 제기한 3 건의 소송이 모두 원고 승소로 끝났다. 2021.1.8.1 차 소송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 、2023.11.21.2 차 소송 서울고등법원 판결、그리고 2025.4.25. 3 차 소송 청주지방법원 판결 이다.
 필자는 일본변호사연합회(일변련) 인권옹호위원회 산하 ‘한일전후미처리문제 변호사 공동행동 특별부회’(한일부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병합 100 주년인 2010 년,대한변호사협회(대한변협)에서 일변련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강제동원 피해 등 한일 양국의 미해결 전후처리 문제에 대해 양국 변호사가 공동으로 법적 문제와 해결책을 검토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 있었다. 이에 일변련은 워킹그룹을 설치하고 대한변협과 협의하여 2010.12.경 도쿄와 서울에서 한일변호사회 공동심포지엄을 개최하여 공동선언문을 발표하였다.그 내용은 과거의 역사 인식의 공유가 미래의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초석임을 확인하고, 양국에서의 한일회담 관련 문서 전면 공개, 일본에서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강제동원 피해자를 위한 인권회복 입법, 연금문제, 전몰자・전상자 원호, 유골수습, 문화재 반환 등의 과제에 함께 노력해 나갈 것을 서약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과제를 협력하여 추진하기 위해 일변련은 위 한일부회, 대한변협은 인권위원회 산하에 일제피해자인권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양측이 정기적으로 한일협의회를 개최하여 정보교환과 논의를 하면서 공동선언 내용의 실현을 도모하기로 했다. 안타깝게도 이후 일변련이 공동선언의 서약을 성실하게 이행해 왔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한일부회와 특별위원회에 의한 한일협의회는 15 년째 이어져 오고 있다.
 대한변협 특별위원회에는 진보와 보수, 젊은이와 베테랑 등 성향과 연령을 가리지 않는 다양한 위원들이 선임되어, 1 차 소송과 2 차 소송의 원고 대리인 대부분이 특별위원회 위원들이었다. 그래서 필자는 이들 소송의 제기부터 그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특히 2 차 소송의 대리인으로부터 국가면제에 관한 일본어 문헌 수집을 의뢰받았고, 필자가 이 재판에 관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렇게 해서 소송의 쟁점이 되는 이론적 문제를 한국의 변호사와 토론하고, 증인으로 한국 법정에서 증언하는 귀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러한 소송의 의의와 경위에 대해서는 그때마다 잡지나 시민운동 기관지 등에 짧은 글을 기고해 왔지만 ,모든 재판에서 원고가 승소한 기회에 이를 정리하여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

Ⅱ.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한국 법원에서의 법정 투쟁

 1.한일회담 관련 문서 공개 청구

  현재까지 한국 법원에서 전쟁・식민지 피해자에 의한 이른바 전후 보상 재판이 약 60건 제기되었다.(1) 그 중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법정 투쟁의 시작은 2002 년에 제기된 한일회담 문서 공개 청구 소송이다. 같은 해 일본군 '위안부'피해자를 비롯한 한국의 전쟁,식민지 피해자들이 정보공개법에 따라 한일회담 관련 회의록 등의 공개를 청구했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이 문서들이 정보공개법에 규정된 '공개될 경우...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되는 정보'라며 공개를 거부했다. 피해자들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피해자에 대한 배상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일본 정부의 주장의 당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해당 문서를 통해 청구권협정 체결 경위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거부 처분 취소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했다.2004.2. 1심판결(2)은 일부 문서에 관해서 원고들의 청구를 인정하고, 한국 정부(노무현 정부)는 일단 항소하였으나, 이후 항소를 취하하고 관련 문서를 전면 공개하였다 .

 2.민관공동위원회의 견해

  한국 정부는 공개의 후속조치를 검토하기 위해 공동대표 2 명과 정부위원 9 명, 민간위원 10 명(법조계, 역사학계, 언론계, 종교계, 피해자 단체 등)으로 구성된 민관공동위원회를 구성하여 2005.8. 논의 결과를 정리하여 위원회 견해를 발표하였다.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〇한일청구권협정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청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샌프란시스코 조약 제 4 조에 근거한 한일 양국 간의 재정적-민사적 채권채무관계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〇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일본 정부-군 등 국가권력이 관여한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된 것으로 볼 수 없으며,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있다"

  민관공동위원회의 공동대표는 이해찬 국무총리(당시)였으며, 이는 사실상 한국 정부의 공식 견해였다.

 3.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

  위 견해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는 일본 정부의 견해와 정면으로 대립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의 해석 차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3)가 규정한 외교적 경로를 통한 해결이나 중재 절차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이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2006.8. 한국 정부의 부작위로 인해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확인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는 2011.8.30. 국가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당한 국민에 대한 헌법상 보호의무가 있고, 한일청구권협정 제3조의 절차에 따라 일본과의 해석상의 분쟁을 해결하여 청구인들의 인권을 보호할 작위의무가 있음에도 한국정부가 이 작위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청구인들의 주장을 인정하는 위헌결정을 선고하였다

Ⅲ.일본국에 대한 소송의 시작

 1.일본 정부의 협의 거부와 1 차 소송

  위헌 결정에 따라 한국 정부(이명박 정부)는 2011.9.와 11. 두 차례에 걸쳐 일본 정부에 한일청구권협정 제 3 조 1 항에 따른 협의를 요청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한일 간에는 조약상 분쟁이 존재하지 않는다”며 이를 무시했다(4)
  이러한 상황을 보고 '나눔의 집'에서 살고 있는 피해자 12 명은 2013,8.13.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일본국을 상대로 조정신청을 했다. 한국 정부와의 협의를 거부하고 있는 일본 정부도 피해자들의 직접적인 요청이 있으면 대화에 응하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다. ‘나눔의 집’은 독지가 스님이 개인적으로 설립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공동생활시설이지만, 이후 우여곡절을 거쳐 한국 최대 불교 종파인 조계종이 운영하고 있다. 조정 사건의 신청 대리인은 나눔의 집 고문변호사인 K 변호사가 맡았는데, K 변호사는 대한변협 특별위원회 초기 위원이다. 어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을 가까스로 면한 경험이 있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열성적으로 임하고 있었다.
  신청 당시 한일협의회에서 조정이 불성립될 경우 국가면제 문제가 발생하게 되는데 어떻게 대응할 생각이냐고 필자가 K 변호사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K 변호사의 답변은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은 일본국과의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을 우선하고 싶다는 취지였다. 이처럼 이 조정은 국가면제의 벽을 돌파하고 일본국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일본 정부와의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 조정 절차도 무시하고 신청서 수령을 거부했고, 약 2 년에 걸친 송달 시도도 실패로 끝났으며, 2015 년말 법원은 조정 불성립 결정을 내리고 한국 민사소송법 규정에 따라 자동적으로 소송으로 넘어갔다. 이를 '1 차 소송'이라고 부른다.

 2.’한일합의’와 2 차 소송

  같은 2015 년말, 기시다 외무상(당시)이 방한해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갖고 일본 정부(2 차 아베 정부)와 한국 정부(박근혜 정부) 간의 이른바 '한일합의'를 맺었다. 일본 정부가 한국에 설립될 재단에 10 억엔을 출연함으로써 '위안부' 문제가 '불가역적으로' 해결되고,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양국은 상호 비난을 자제하는 등의 합의가 피해자나 지원단체의 동의 없이 이뤄졌다. 게다가 윤 장관은 서울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대해 “적절히 해결하겠다 ” 고 말했고, 비공개 부분에는 향후 '성노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었다. . 반발하는 피해자들을 달래기 위해 한국 정부는 아베 총리에게 사죄 서한 등 추가 조치를 요청했지만, 아베 총리는 “그럴 의사는 털끝만큼도 없다” 고 밝혔다.(5)
  오랫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지원해 온 정의기억연대(정대협 후신)와 진보적 변호사 단체인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이 이 '한일합의'에 대해 논의한 결과, 더 이상 한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 행사를 기대할 수 없다며 법적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구체적으로는 관련 문서 공개 청구(6)、 헌법소원(7)、한국 정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8)、그리고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다. 이후 준비가 진행되어 2016.12.28. 생존 피해자 11 명과 사망 피해자 5 명의 유족이 원고가 되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이를 '2 차 소송'이라고 부른다.
  대리인단의 중심이 된 L 변호사, U 변호사, Y 변호사 등은 대한변협 특별위원회 초창기 젊은 위원이었는데, 전후 보상 재판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인권 소송을 경험하며 민변의 중심 멤버가 된 변호사들이다. 이들과 더 젊은 세대의 변호사들로 대리인단이 구성되었다. 이처럼 2 차 소송은 피해자, 지원단체, 변호사들이 국가면제의 벽을 돌파하고 일본 국가의 책임을 추궁하는 것을 목표로 제기한 소송이었다.

 3.송달을 둘러싼 절차의 교착상태

  이렇게 해서 한국에서 일본을 피고로 하는 2 건의 소송이 계류되게 되었다. 그러나 소장 등의 송달을 통해 피고에게 소송 제기를 통지하지 않으면 이후 절차를 진행할 수 없다. 일본 정부는 두 소송의 문서 수령을 철저히 거부했고, 소송 절차는 몇 년 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 문제는 차후에 검토하기로 하고, 우선 이 소송의 법적 쟁점을 살펴보기로 한다.

Ⅳ 국가면제의 국제법

 1.유일한 쟁점

  민사소송은 당사자의 주장과 입증을 기초로 이루어지며(변론주의), 2 건의 소송에서 일본 정부는 한국 법원의 절차를 무시하고 아무런 주장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한일청구권협정이나 '한일합의'는 쟁점이 되지 않는다. 한편, 소장이 제출된 법원에 그 사건을 재판할 권한이 있는지에 대한 관할권 문제는 변론주의에 의하지 않고 법의 규정에 따라 법원이 직권으로 판단한다. 따라서 한국 법원에 일본을 피고로 하는 소송의 관할권이 있느냐는 국가면제(또는 주권면제) 문제가 유일한 쟁점이 되었다.

 2.국가면제란

  현재 국제사회는 독립국가들의 집합체이다. 현실적으로 일부 강대국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국제사회의 제도는 국가는 평등하다는 원칙(주권평등 원칙)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국가가 평등하다면 국가는 다른 국가의 기관에 불과한 외국 법원의 재판에 따를 필요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주권국가는 다른 국가의 재판권에 따르지 않아도 된다는 관습국제법상의 규칙이 생겨났다. 이를 국가면제라고 한다.
  지금도 국가면제의 범위에 대해 통일된 성문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면제의 범위를 규정한 조약으로 1972 년 유럽국가면제조약이 있으나 가입국은 8 개국에 불과하고, 2004 년에 유엔국가면제조약이 만들어졌으나 30 개국의 비준으로 발효되는 규정에 비해 현재 비준국은 13 개국에 불과해 미발효 상태이다. 또한, 일본을 포함한 적어도 12 개 국가(9)에는 국가면제의 범위를 규정하는 국내법이 있지만,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에는 이러한 국내법이 없다. 이러한 경우 국가면제 인정 여부는 관습국제법에 따라 해당 국가의 법원이 판단할 수밖에 없다.

 3.절대면제주의에서 제한면제주의(상행위 예외)로의 전환

  과거 국가면제는 주권평등 원칙에서 도출되는 절대적인 규칙으로 여겨졌다 (절대면제주의). 국가의 어떠한 행위도 타국 법원의 소송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절대면제주의는 여러 가지 불편함이 발생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가장 먼저 문제가 된 것은 국가의 상행위이다. 국가가 직접 무역 등 상행위의 당사자가 되거나 대금 지급 보증 등을 하게 되면, 상대방이 국가인 경우 재판에서 청구할 수 없다고 하면 안심하고 거래할 수 없게 되었다. 이에 19 세기 말경부터 이탈리아, 벨기에 등에서 국가의 행위라 하더라도 일반인이나 법인도 할 수 있는 사법(私法)행위의 경우에는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고 외국 국가를 피고로 재판으로 청구할 수 있다는 국내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국가의 행위를 주권 행사로 하는 '주권행위'와 일반인도 할 수 있는 상행위 등 '업무관리행위'로 분류하고, 주권행위에는 국가면제가 적용되지만 업무관리행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제한면제주의'(상행위 예외)로 정리되어 점차 전 세계 법원으로 확산되어 100 년이 걸려서 동아시아에 이르렀다. 한국 대법원은 1998.12.17.,일본 최고재판소는 2006.7.12. 판결에서 제한면제주의를 채택했다. 절대면제주의의 마지막 보루였던 중국도 2024.1.1. 시행된 국가면제법에서 제한면제주의를 채택하여 오늘날에는 누구도 제한면제주의를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4.불법행위 예외

  그런데 주권행위와 업무관리행위의 구별은 행위의 목적이 아니라 행위 자체의 성질로 판단하는 것이 통설이지만, 현실적으로 그 구별은 쉽지 않다. 특히 문제가 된 것은 영사관이 보유하는 자동차에 의한 교통사고이다. 피해자가 민사소송을 제기하면 가해자나 그 보험사가 운전은 주권적 행위라며 국가면제를 주장하는 경우가 빈번했다. 그러나 가해 차량이 외국 소유의 차량이었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일 뿐 피해자에게는 아무런 책임이 없다. 피해자 보호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경우 국가면제를 부정하고 재판에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할 필요성이 크다. 한편, 이런 경우 외국을 피고로 하여 재판을 진행하더라도 청구 내용이 사과 등이 아닌 금전적 배상만 요구한다면 외국의 주권이나 존엄성을 침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영사번호 자동차의 운전행위 자체의 법적 성격이라는 소모적인 논쟁에 얽매이지 않고, 국내에서의 외국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금전배상청구소송에서는 그 불법행위가 주권행위라 하더라도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례가 1960 년대부터 유럽과 미국의 국내법원 등에서 축적되어 왔고 국내 입법이나 조약에도 반영되기 시작했다. 현재 국가면제의 범위를 규정한 국내법을 가진 12 개국 중 일본의 대(對)외국민사재판권법 10 조를 포함한 11 개국 법률, 유럽국가면제조약 11 조, 유엔국가면제조약 12 조에 영역 내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채택되어 있다.。

 5.인권침해와 국가면제

  자동차 사고 처리에 비롯된 불법행위 예외이지만, 이를 인정하는 조약이나 국내법은 교통사고에 국한하지 않고 법정지국(法廷地國)에서의 외국의 불법행위 전반을 국가면제의 예외로 삼고 있다. 그리고 오래전부터 정치적 암살이나 고문 등에도 국가면제의 예외를 인정하는 판례가 쌓여왔다.
  ⑴ 레테리엘 (Letelier) 사건
   1976 년 칠레 아옌데 정부에서 주미대사와 외무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레테리엘(Marcos Orlando Letelier del Solar)은 미국 수도 워싱턴에서 피노체트 정권의 국가정보원 요원에 의해 폭살당했다. 그의 유족은 미국 워싱턴 DC 콜롬비아 법원에서 칠레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법원은 1980 년 판결에서 이러한 강행규범 위반 행위에 대해 단순히 칠레가 주권국가라는 이유로 국가면제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칠레 정부에 피해자 유족에 대한 손해배상금 지급을 명령했다(10)
  ⑵ 江南(Jiang Nan) 사건
   1984,대만(蔣經國政権)의 전 국방부 정보국 국장 王希苓이 대만 폭력조직인 竹聯幇 조직원에게 화교 작가 江南(劉宜梁)의 살해를 명령하여 로스앤젤레스 자택 차고에서 암살했다. 유족의 배상 소송에서 1993 년 미국 제 9 연방항소법원은 이러한 행위는 주권 남용이며 국가의 공권적 행위가 아니라며 국가면제를 부정했다.

 6. 인권 예외

  ⑴법정지 국외에서의 불법행위로 인한 인권 침해
   역사적으로 불법행위 예외를 규정한 국내법이나 조약은 '법정지국에서의 불법행위'일 것을 요건으로 하고 있다. 위의 두 사례에서는 적어도 불법행위의 일부(실행행위)가 법정지국에서 이루어졌는데, 반대로 법정지국 밖에서 발생한 불법행위로 인한 인권침해 피해자의 소송은 반드시 국가면제에 의해 각하되는 것일까? 불법행위지와 법정지국이 일치하지 않는 인권침해 사건은 드물지 않다. 예를 들어 재한 피폭자가 한국 법원에 미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불법행위지는 일본, 법정지는 한국이 된다. 중국이나 일본에 거주하던 조선인 여성이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경우 불법행위지는 중국이나 일본, 법정지는 한국이다. 이런 경우 피해자의 보호 필요성에 있어 불법행위지와 법정지가 일치하는 경우와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없다.
   그래서 국가 중심의 낡은 국제법에서 벗어나 개인을 국제법의 주체로 자리매김하려는 새로운 국제법의 흐름에 대응하여 20 세기 말경 유럽과 미국 법원에서 '인권 예외'가 논의되기 시작하였다. 국가면제에는 국가의 존엄성을 보호하고 외교관계를 안정시킨다는 장점이 있지만, 일정한 경우에는 법정지와 불법행위지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에도 국가면제를 부정하여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를 구제하자는 것이다.
  ⑵강행규범(jus cogens) 위반 행위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 53 조(11)는 일반 국제법의 강행규범은 어떠한 일탈도 허용되지 않는 규범이며, 이에 위배되는 조약은 무효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학살, 강제이송, 노예화, 고문 등 국가에 의한 강행규범 위반행위의 피해자가 제기한 소송이 관습국제법에 불과한 국가면제에 의해 방해받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⑶재판을 받을 권리
   국가에는 세계인권선언, 유엔헌장, 국제인권규약, 각국 헌법 등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따라서 중대한 인권침해의 피해자가 다른 구제수단이 없는 경우 국가면제를 이유로 재판을 거부하는 것은 국가의 국제적 의무를 위반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인권 예외는 아직 요건이 정형화된 것은 아니지만, 이처럼 중대한 인권침해의 원인이 강행규범 위반이고 국내 재판이 최후의 구제수단인 경우에 전형적으로 주장될 수 있다.
  ⑷알 아드사니(Al-Adsani) 사건
   영국, 쿠웨이트 이중국적자인 사업가 알 아드사니 씨는 쿠웨이트 국가에 대한 협조를 거부하며 고문을 당했고, 영국으로 탈출한 후 영국 법원에 쿠웨이트 국가를 제소했다. 불법행위지는 쿠웨이트, 법정지는 영국이다. 영국 법원은 인권 예외(영국 법원의 관할권)를 부정하며 청구를 각하했지만, 그는 이 각하가 불법이라며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했고, 2001. 유럽인권재판소 판결은 영국 법원의 판결을 지지했지만, 이 평결은 9 대 8 의 근소한 차이였다. 이 시점에서 이미 인권 예외에 대한 찬반이 길항하고 있었다.(12)
  ⑸테러 예외
   미국에서는 1996 년에 외국국가면제법을 개정하여 미국 정부가 테러지원국가로 지정한 국가의 고문, 초법규적 살해 등의 행위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에서는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기로 했다. 피해자가 미국 법원에서 승소하면 정부가 동결한 상대국 자산에서 변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구제수단이 되고 있다. 행정의 판단에 의해 사법관할권이 결정되는 시스템에는 문제가 있지만, 대상이 강행규범 위반 행위로 한정되어 있다는 점, 불법행위지를 묻지 않는다는 점, '테러지원국가'에는 테러 피해자를 구제하는 사법제도가 통상적으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 역시 하나의 인권 예외로 평가할 수 있다.

Ⅴ 전쟁-식민지 피해자와 국가면제

 1.넘기 어려운 장벽

  전쟁 행위는 전형적인 주권 행위로 이해되어 왔기 때문에, 과거에는 전후 보상 재판에서 국가면제는 넘기 어려운 장벽으로 여겨졌다. 따라서 피해자들은 자국 법원에서 가해국을 피고로 하는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피해왔다.
  예를 들어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은 미국을 피고로 삼지 않고,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에 의해 일본 정부가 미국에 대한 피폭자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을 소멸시켰다며 일본 정부에 보상을 청구했다(13)(원폭재판). 마찬가지로 시베리아 억류 피해자들은 일소공동선언으로 소련에 대한 배상청구권이 소멸되었다며 일본국에 보상을 청구했다.(14)
  또한 신일철,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 동원된 한국인 피해자들은 일본 법원에서는 기업과 일본 국가를 피고로 하여 배상을 청구했으나, (15)한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때는 피고를 기업으로 한정했다(16).

 2.나치-독일 피해자들의 투쟁(17)

  국가면제의 벽을 돌파하고 가해국의 책임을 추궁하려는 시도는 나치 독일의 전쟁범죄 피해자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독일은 전후 보상의 우등생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 모든 피해자에게 보상을 한 것은 아니다. 유대인 학살과 같은 인종, 종교, 세계관, 정치적 반대를 이유로 한 '나치의 불법'에 의한 박해 피해자에게는 '도의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연방배상법 등 국내법을 정비해 보상해 왔지만, 무력분쟁 시 민간인 학살이나 강제노동 등 일반 전쟁행위로 인한 피해자는 방치되어 왔다(18)
  동서독 통일 이후에도 배상에서 소외된 피해자들이 독일 법원에 국제법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하면 개인은 국제법의 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부당했고, 국내법으로 청구하면 전쟁 중에는 일반 불법행위법이 적용되지 않고 보상 국내법의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이에 1990년대부터 자국 법원에 독일을 피고로 제소하는 피해자들의 시도가 시작되었다. 후술할 ICJ판결의 사실 인정에 따르면, 벨기에, 슬로베니아, 그리스, 폴란드, 이탈리아, 프랑스, 세르비아, 브라질의 각국 법원에 이러한 소송이 제기되었다(19)

 3.장벽을 넘어간 그리스, 이탈리아 피해자들

  위 소송은 대부분 국가면제를 이유로 각하되었으나, 그리스와 이탈리아의 국내 법원에서는 다르게 전개되었다.
  그리스 대법원에서는 독일 점령기인 1944 년, 독일군이 파르티잔 부대의 공격에 대한 보복으로 무고한 민간인 214 명을 학살한 디스토모 사건 (20)의 피해자 유족이 2000.5.4.판결 에서 승소했다 . 판결은 강행규범에 위배되는 행위를 하는 국가는 국가면제를 묵시적으로 포기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21)
  이탈리아에서는 제 2 차 세계대전 중 이탈리아에서 포로로 잡혀 독일에서 강제노동에 종사했던 구 군인 펠리니 씨가 독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 하급심은 독일의 국가면제를 인정해 펠리니 씨의 청구를 각하했으나, 2004.3.11.파기원(대법원) 판결은 국제범죄에는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며 하급심 판결을 파기하고 원심으로 환송했고 이를 알게 된 다수의 피해자들이 이탈리아 국내 법원에 동종 소송을 제기했다 (22)
  그리스에서 승소한 디스토모 사건 원고들은 법무부 장관의 비협조로 그리스 내 집행이 막혀 독일에서의 집행과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이에 2005 년, 이탈리아에서 집행 승인을 요청하며 소송을 제기했고, 2007 년 피렌체 항소법원 판결은 이를 인정하여 원고들은 독일이 이탈리아 내에 소유하고 있는 문화시설 빌라 비고니에 재판상 저당권을 설정했다. (23)

 4.국제사법재판소(ICJ) 국가면제 독일 대 이탈리아 사건(24)

  ⑴ 독일의 제소
    이탈리아의 소송 절차에 궁지에 몰린 독일은 2008.12.23.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탈리아를 제소했다. 이탈리아 법원의 일련의 국가면제 부정은 독일에 국가면제를 부여하는 관습국제법상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며 이탈리아의 국제법 위반 확인, 독일의 국가면제를 침해하는 결정을 무효화하는 조치 등을 요구한 것이다. 이탈리아는 유럽인권조약에 근거한 ICJ 의 관할권을 인정하여 응소하였고, 그리스는 비당사자로서 소송에 참가하였다.
  ⑵ 소송의 쟁점
    이탈리아는 불법행위 예외는 이미 관습국제법이 되었으며, 이탈리아 영역 내에서 이루어진 독일군의 불법행위에 대해 이탈리아 법원이 독일에 국가면제를 적용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독일은 불법행위 예외는 아직 관습국제법이라고 할 수 없으며, 설령 관습국제법이라고 하더라도 군대의 행위에는 국가면제를 적용한다는 관습국제법이 존재한다고 반박했다. (쟁점①)
   또한 독일이 문제 삼은 소송의 원고 중에는 이탈리아 영토 밖에서 독일로 끌려가 노동을 강요당한 피해자도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는 불법행위 예외와 함께 인권 예외도 주장하였다. 독일의 불법행위가 국제인도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고, 위반한 규범이 강행규범이며, 국내 법원이 피해자가 이용할 수 있는 최후의 구제수단이기 때문에 국가면제를 적용하지 않고 피해자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25)독일은 2 차 세계대전 당시 불법행위를 한 것에 대한 책임은 인정하지만, 이탈리아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관습국제법이 성립되지 않다고 주장했다 . (쟁점②)
  ⑶ 다수 의견
   2012.2.3, ICJ 는 오와다 히사시(小和田恒) 소장을 비롯한 12 명의 재판관에 의한 다수 의견으로 독일의 청구를 대부분 인정했다.쟁점 ① 에 대해서는 불법행위 예외가 관습국제법인지 여부는 판단하지 않고, 쟁점을 '무력분쟁 수행과정에서 군대의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적용한다는 관습국제법이 존재하는지 여부'로 좁혔다. 그리고 그 문제의 국내 판례로 제 2 차 세계대전 중 행위에 대해 독일을 피고로 한 프랑스, 슬로베니아, 폴란드, 벨기에, 세르비아, 브라질, 이탈리아, 그리스 등 8 건의 사건을 들었고, 이 중 독일의 국가면제를 부정한 것은 이탈리아와 그리스뿐이었으며, 그리스도 이후 최고특별재판소가 독일의 국가면제를 긍정한 바 있어, 무력분쟁 수행과정에서 군대의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적용하는 관습국제법이 존재한다고 결론지었다. 또한 쟁점 ②에 대해서도 이탈리아가 주장한 강제법규 위반, 중대한 인권침해, 최후의 구제수단에 대해 각 요소를 세분화하여 소수의 판례를 세어서 부정했다. 또한 강행규범 위반과 국가면제의 관계에 대해서는 전자는 실체법, 후자는 절차법의 문제이므로 충돌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⑷ 유수프 반대의견
   유수프 재판관(소말리아)은 관습국제법은 항상 발전과정에 있으며, 국내법원의 고립된 판결에서 시작하여 점차 주류가 되어가는 것이지, 각국의 실행사례를 세어보고 상대적 다수에 의해 관습국제법을 인정하는 다수의견의 방식은 항상 국제법의 발전을 저해하는 결론을 도출할 수 밖에 없다고 비판하였다. 그리고 적어도 인도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 있고 국내법원이 피해자의 마지막 구제수단인 경우에는 국가면제를 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⑸ 가야 반대의견
   가야 재판관(이탈리아)은 다수의견과 마찬가지로 인권 예외를 부정하였으나, 불법행위 예외와 군사활동의 관계에 대해서는 각국의 실행은 다양하며, 국내법원은 이 회색지대 내에서 다양한 입장을 채택할 수 있다고 하면서 불법행위가 이탈리아에서 이루어진 사건에 대해서는 이탈리아 재판권의 실행은 국제법상의 의무 위반이라고 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⑹ 칸사드 트린다지 반대의견
   칸사드 트린다지 재판관(브라질)은 다수의견보다 훨씬 긴 316 개 항에 달하는 반대의견을 전개했다. 국제법이 국가 중심의 국제법에서 인권 중심의 국제법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수많은 학회의 선언 등을 인용하여 논증하고, 국가면제 분야에서는 불법행위 예외, 형법 분야에서는 강행규범 위반 행위에 대한 보편적 관할권 등이 인정되어 왔음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19 세기 이후 학설 등을 통해 전쟁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이 인정되어야 한다는 점, 피해자가 속한 국가가 피해자의 청구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점, 침해된 인권의 회복을 위해서는 재판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임계치를 넘어선 중대한 인권침해에는 국가면제가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국가면제로 인해 강행규범 위반에 대한 재판의 실현이 방해받고 있는 이상, 실체법이든 절차법이든 국가면제와 강행규범은 충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국가면제 분야에서는 신구 견해가 서로 다투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판례를 세어보는 것은 무의미하며, ICJ 의 법원(法源)으로서 공인된 '각국의 가장 우수한 국제법학자들의 학설'에 의거하여 국가면제를 부정했어야 한다고 다수 의견을 비판하였다.
  ⑺ 코로마 개별의견
   다수의견을 지지하는 콜로마 재판관(시에라리온)는 주권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의 예외가 존재하지 않으며, 국제법은 개인 피해자의 국가에 대한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 판결은 국가면제에 대한 판단일 뿐 국가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 아니며, 문제 해결을 위한 당사자 간 협상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⑻ 베누나 개별 의견
   모하메드 베누나 재판관(모로코)은 과거 국내 판례와 입법례에만 의거하여 국제법의 발전을 고려하지 않는 다수의견의 접근법을 비판하며, 현재의 국제법 추세를 반영하면 국가면제는 책임을 인정한 국가에게만 주어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독일이 2 차 세계대전 중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있는 점 등을 이유로 다수의견의 주문에는 찬성했다.
  ⑼ 키스 개별의견
   키스 재판관(뉴질랜드)은 다수의견을 보강하여 국가면제의 원칙이 국제법 질서의 근간임을 강조하며, 전쟁 피해 보상은 원래 국가 간 협상을 통해 해결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이번 판결이 독일의 전쟁 중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⑽ 일본에서의 부정적 인식의 확산
   이 ICJ 판결 당시 이탈리아의 피해 군인들이 이탈리아 법원에서 독일을 제소하여 승소한 사실과 독일이 이를 국가면제 위반이라며 ICJ에 제소하고 ICJ가 독일의 주장을 인정한 것은 일본에서도 보도되었지만, 판결문 전체는 일본어로 소개되지 않았다. 한편, 2018.10.30. 한국 대법원 판결(신일철 사건)의 반대의견은 한일청구권협정과 같은 일괄처리 협정에 의해 국가가 상대국으로부터 보상-배상을 받은 경우, 이 자금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더라도 개인의 청구권은 소멸한다는 견해의 근거로 이 판결을 들었다. 일본 연구자들의 판례 평론이 몇 편 나왔지만(26)、전쟁-식민지 피해자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것은 찾아볼 수 없었고, 인터넷에는 이 사건에 관한 국제법 전공 대학원생들의 논문 등이 산재돼 있었지만, 인권 예외에 대해 '머지않아 도태될 것'이라는 식의 논조가 주류를 이루었다. 전후 보상 문제에 관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ICJ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한 해결론을 인정했다거나 피해자가 가해국 이외의 법정에서 다투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비관적인 인식이 퍼져나갔다.
  ⑾ ICJ판결은 일괄처리 협정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다.
   그러나 판결문 전체를 꼼꼼히 읽어보면 이 판결이 그런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우선, 앞서 언급한 한국 대법원 판결의 반대의견은 완전히 잘못된 인용이다. 실제로 ICJ판결에는 일괄지급금이 다른 목적으로 사용된 경우, 그것이 금전적 분배를 받지 못한 개인이 가해국에 청구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지는 의문이라는 취지의 언급이 있다(102 항).그러나 이는 정부 간 협상에 의한 보상의 성부에 대한 국내 법원의 판단능력에 대한 방론(傍論) 부분의 감상적 서술에 불과하다. 반대로 다수의견은 결론 부분(108 항)에서 “평화조약 77 조 4 항 및 1961 협정의 조항이 이탈리아에서의 절차의 주제에 대한 구속력 있는 청구권 포기 조항이라는 독일의 주장의 당부에 대해서도 판단할 필요가 없다” “면제 문제에 관한 법원의 판단은 독일이 책임을 지고 있는지 여부의 문제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고 명시하고 있어, 이 판결이 일괄처리협정에 의한 개인 청구권의 소멸에 대해서는 아무런 판단을 내리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⑿ 국가 중심의 국제법에서 인권 중심의 국제법으로
   그리고 칸사드 트린다지 반대의견이 상세히 설명하고 있듯이, 국제법은 국가 중심의 국제법에서 인권 중심의 국제법으로 전환하는 큰 흐름 속에 있다. 강행규범을 위반하는 국제범죄 피해자의 인권회복을 위해 재판을 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국가면제를 제한하려는 시도는 이러한 큰 흐름에 따른 것이지, 결코 '도태될' 고립된 견해가 아니다.
  ⒀ 다수 의견의 문제점
   각 반대의견에서 지적하고 있듯이 다수 의견은 ①쟁점을 극단적으로 좁혀 분쟁의 원인이 된 국가의 불법행위 사실과 분리하여 국가면제를 추상적으로 검토하고, ②각국의 국가실행(국내 판례나 입법례 등)을 조사하여 그 상대적 다수에 의해 관습국제법을 인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③ ICJ가 의거해야 할 법원의 하나로 ICJ규정 에서 인정하고 있는 '각국의 가장 우수한 국제법학자의 학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구체적으로는 이제 막 시작된 독일을 피고로 한 재판의 단 8 건의 국내 판결 중 상대적 다수에 의해 “무력분쟁 수행 과정에서 군대의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적용하는 관습국제법이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학설을 무시하고 국내 판례를 형식적으로 세어보아 관습국제법을 인정하는 접근방식에 따르면, ICJ 는 발전단계의 국제관습법에 대해서는 항상 부정적(보수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이러한 접근방식의 결과, 앞서 언급한 미국 판례, 테러 예외, 학설의 발전 등은 다수의견에서 완전히 무시되었고, 그 결과 국가중심의 국제법에서 인권중심의 국제법으로의 큰 흐름을 완전히 놓치게 되었다.
  ⒁ 판결의 파급력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관련하여 말하면, ICJ규정 제59조는 “법원의 재판은 당사자 간 그리고 그 특정 사건에 대해서만 구속력을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 판결이 비당사국인 한국에서의 소송을 구속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독일과 이탈리아 양국은 ICJ의 관할권을 규정한 유럽인권조약의 가맹국이지만, 한일 간에는 분쟁을 ICJ에 회부하는 조약도 없고, 한국은 ICJ규정 제36조2항의 관할권 수락 선언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한일 중 한 쪽이 ICJ에 제소해도 다른 쪽은 거부할 수 있으며, 애초에 한일 문제가 ICJ에서 다퉈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게다가 이 판결은 쟁점을 극단적으로 좁혀 설정했기 대문에 다른 사건에 미치는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적어도 무력분쟁 수행과정에서의 군대의 행위에는 국가면제가 적용된다”는 인정은 무력분쟁 수행과정이 아닌 국가나 군대의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가 부정될 여지를 남기게 된다. 또한 국가 실행의 상대적 다수에 의해 현재의 관습국제법을 인정하는 이상, 향후 국제법의 발전에 따라 ICJ판결의 취지와 다른 국내 판결이 나올 것이 상정되어, 그것이 상대적 다수가 되면 ICJ의 판단이 변경되는 것이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5.이탈리아 헌법재판소 판결(27)

  이 ICJ 판결에 따라 이탈리아 파기원(대법원)은 판례를 변경하여 이탈리아 법원의 관할권을 부정했다. 또한 국회도 2013.1.경 ICJ 판결을 수용하기 위해 동종 사건이 계류 중인 법원에 관할권 부재를 선언하도록 의무화하고, 확정판결의 재심 사유에 관할권 부재를 추가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그러나 2014.10.22, 이탈리아 헌법재판소는 이러한 법률이 이탈리아 헌법이 보장하는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라고 판시했다(28)
  이처럼 불법행위 예외와 인권 예외에 대한 국제법의 상황은 유동적이며, 이탈리아와 독일의 분쟁도 아직 결착이 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6.아시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미국 소송

  ⑴미국 법원에 제소
   나치 독일 피해자들이 법정투쟁을 시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시아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도 국가면제의 벽을 돌파하기 위한 시도를 시작했다. 2000.9.18, 한국인 6 명, 중국인 4 명, 필리핀인 4 명, 대만인 1 명 등 총 15 명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국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워싱턴 특별구 연방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29)
  ⑵쟁점
   일본 정부는 법원에 의견서를 제출하여 일본에 대해 국가면제를 주어져야 하며,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이 사건은 사법적 판단에 맞지 않는 정치적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원고 측은 ① 일본은 포츠담 선언 수용으로 국가면제를 포기했다, ② 국제법상의 강행규범을 위반한 국가는 국가면제를 묵시적으로 포기했다, ③ '위안소' 경영은 일본 국가의 상업적 사업으로 경영되고 있었으며, 1952 년 '테트 레터'(30) 와 1976 년 외국국가면제법으로 미국은 제한면제주의로 전환했지만, 이는 1952 년 이전의 행위에도 소급 적용된다, 등의 주장을 전개했다. 그러나 2001.10.4. 지방법원 판결 및 2003.6.27. 콜롬비아 순회 연방항소법원 판결은 제한면제주의는 1952 년 이전의 사건에 소급 적용되지 않는다며 원고들의 주장을 부정하고 국가면제를 적용하여 청구를 각하하였고, 이에 원고들은 연방대법원에 상고하였다.
  ⑶'황금의 아델레 사건'(31)
   그 무렵, 국가면제를 둘러싼 또 다른 유명한 사건이 연방대법원에 계류 중이었다. 클림트의 명화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의 모델이자 소유주의 조카이자 상속인인 마리아 알트만이 나치에게 빼앗겨 현재 오스트리아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그림의 점유회복을 요구하여 오스트리아 국가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오스트리아 국가가 이 그림을 입수한 행위는 상행위이지만, 제한면제주의(상행위 예외)가 1952 년 이전의 상행위에 적용될 수 있는지가 큰 쟁점이 되었다. 결국 연방대법원은 2004.6.7, 상행위 예외는 1952 년 이전의 행위에도 적용된다고 판단했다. 동 법원은 그 직후인 6.14. '위안부' 소송에 대해 황금의 아델레 사건 판결에 비추어 재검토할 것을 요구하며 원심에 파기환송했다.
  ⑷연방대법원 판결(32)
   그러나 2005.6.28. 항소법원의 파기환송심은 국가면제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고, 이번에는 사법심사에 적합하지 않은 정치적 문제라며 청구를 기각했다. 그리고 재상고를 받은 대법원은 원심의 판단을 인정하여 2006.2.21. 재상고를 기각했다.
   이 소송은 2000 년 이라는 이른 시점에 국가면제의 벽에 육박한 선구적인 소송이었지만, 6 년 가까이 이어진 미국에서의 법정투쟁은 원고들의 패소로 끝났다.
  ⑸일본 정부의 이중 기준
   그런데 일본 정부는 미국 소송에서는 미국 법원의 소송 절차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대형 로펌에 의뢰하여 의견서를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했다. 반면 한국 소송에서는 한국 법원의 소송절차를 완전히 무시했다. 이 이중 기준을 기억해두어야 한다.

Ⅵ.일본군 '위안부' 소송의 전개

 1. 헤이그 송달조약

  이제 문서 송달을 둘러싸고 교착상태에 빠진 한국의 일본군 '위안부' 소송으로 돌아가 보자.
  송달의 국제 규칙은 '민사 또는 상사에 관한 재판상 및 재판 외 문서의 외국에서의 송달 및 통지에 관한 조약'(헤이그 송달 조약)이며, 일본도 한국도 이 조약의 당사국이다. 이 조약에 따르면 당사국은 외국으로부터의 송달을 접수하고 처리할 책임을 지는 '중앙당국'을 지정한다(제2조). 일본의 경우 외무성이 '중앙당국'으로 지정되어 있다. 따라서 외국의 법원이 일본의 중앙당국인 외무성에 소송서면이나 송달 처리를 요청하는 서면을 보내면 외무성이 일본 국내의 피고에게 송달하게 된다. 또한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외교적 경로'를 통해 '중앙당국'에 보낼 수 있다고 규정되어 있다(제9조).

 2. 일본 정부의 수령 거부

  2016 년 말 제기한 2 차 소송의 경우, 이듬해 4월에는 '중앙당국 방식'으로, 즉 법원에서 일본 외무성에 서면을 보내 송달을 요청했다. 그런데 외무성은 사소한 부분의 번역이 부족하다며 이를 반송해 왔다. 그래서 번역을 수정해 다시 보냈더니 '헤이그조약 제13조 주권침해'를 이유로 반송해 왔다. 법원은 이듬해인 2018.11.경 한국 외무부에서 일본 외무성으로 송부하는 '외교적 경로'로 송달을 시도했다. 그러나 외무성은 지난번과 같은 이유로 이를 반송했다. 헤이그조약 제13조는 송달 요청은 ‘수탁국에 의해 그 주권 또는 안전을 해치는 성질의 것이라고 판단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부할 수 없다’ ‘수탁국은 해당 사건에 대하여 자국의 법률상 전속적 재판관할권을 가지고 있거나 자국의 법률상 해당 청구의 취지에 대응하는 법적 수단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전항의 송달 또는 통지의 실시를 거부할 수 없다.’ 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한 한일 양국의 분쟁은 소송 관할권을 둘러싼 것으로, 일본 외무성의 대응은 단순히 절차의 지연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일본 외무성의 대응은 소송 진행을 방해했고, 그 사이 많은 피해자들이 세상을 떠났다.
  결국 법원은 통상적인 방법으로는 송달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2019.3.5. 공시송달을 명령하였고, 같은 해 5. 9. 송달의 효력이 발생하여 소송 절차가 진행하게 되었다. (33)
  1 차 소송에 대해서도 유사한 과정을 거쳐 2 차 소송보다 다소 늦게 공시송달의 효력이 발생하였다.

 3. 1심에서의 주장-입증

  이렇게 두 소송 모두 제소 후 몇 년이 지나서야 겨우 소송 절차가 진행되었다.2차 소송은 2019.11.13, 1차 변론기일 이후 2020.11.11.까지 총 6차의 변론기일이 진행되었고, 국가면제의 벽을 돌파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 온 대리인단은 이 사건이 국가면제의 예외에 해당한다는 점을 상세히 주장-입증하였다. 원고 측은 이 사건의 국제법적 쟁점을 포괄적으로 논한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의 의견서、젠더에 관한 국제규범상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심각한 강행규범 위반 행위이며, 인신매매는 상행위이므로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런던정경대(LSE) 크리스티 친킨 교수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또한 국제법학자 백석범 교수가 국가면제 법리에 대해 증언했다. 백 교수는 강행규범 위반에 대해 국가면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관습국제법도 국가면제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관습국제법도 없으며, 국내 법원이 결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피해자의 마지막 구제수단이 국내 재판인 경우에는 국가면제를 배제해야 한다고 증언했다. 일본의 도즈카 에츠로 (戸塚悦朗 )변호사는 유엔에서의 성노예 문제 논의 등을 정리하고, 1994 년 유엔현대노예제작업부회가 상설중재재판소(PCA)에 의한 중재절차를 권고했을 때 피해자 측이 이에 응할 의사를 표명했으나 일본의 거부로 실현되지 못한 사실 등을 지적하는 의견서, 필자가 일본에서 제기된 약 100 건의 전후 보상 재판의 개요를 설명하고, 2007.4.27. 최고재판소 판결은 외국인 피해자에게 배상청구권이 있더라도 소송을 통한 청구는 불가능하다고 판시하였으므로 일본 법원에 의한 구제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제출하고, 한국에서의 소송이 원고들에게 있어 마지막 구제수단임을 입증하였다.
  한편,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은 경위로 소송에 이른 1차 소송에서는 원고 측은 국가면제에 대한 적극적인 입증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의 권장으로 2차 소송의 소송기록에 대한 문서송부촉탁신청을 하여, 2차 소송의 모든 기록이 1차 소송법원에 송부되었다.
  이렇게 해서 2020 년 말까지 두 소송의 변론이 종결되었고, 똑같은 증거를 전제로 같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의 다른 두 재판부가 판결을 선고하게 되었다.

 4. 1차 소송 1심 판결(1.8 판결)

  2021.1.8.에 1차 소송 판결이 먼저 선고되었다.
  판결은 일본군 '위안부' 동원의 역사, 각 원고의 피해, 당시 일본이 가입했던 국제조약, 한일청구권협정, 고노담화, 2015 년 한일합의, 원고 중 상당수가 사망한 사실 등을 상세히 인정했다. 사실관계 자체는 쟁점이 아니지만, 인권 예외에 관한 판단을 위해 국제법에 대한 중대한 위반과 심각한 인권침해의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는 일본군인들의 신체적-정서적 안정, 군대의 효율적 통솔과 통제 등을 목적으로 법령 정비와 예산 배분을 통해 실행한 주권적 행위라며 제한면제주의(상행위 예외)의 대상임을 부정했다. 또한 그리스, 이탈리아의 소송, ICJ판결, 이탈리아 헌법재판소 판결 등을 개관한 후 ①재판을 받을 권리의 중요성 ②절차법에 의해 실체법상의 권리가 형해화되어서는 안 된다③국제법이 개인의 권리보호를 지향하는 가운데 국가면제도 변모했다 ④당시 한반도는 전쟁터가 아니었다 ⑤국제강행규범의 존재 ⑥국가면제를 적용한 경우의 부당한 결과 ⑦국가면제는 강행규범을 위반하여 타국 개인에게 중대한 손해를 끼친 국가의 면책특권이 아니라는 점 등을 지적하며, 일본이 계획적-조직적으로 저지른 반인도적 범죄행위인 이 사건에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➁는 ICJ판결에 대한 비판, ④는 ICJ판결의 논리에 의해서도 이 사건은 국가면제의 대상이 아니라는 취지이다. 그리고 ‘국가의 반인도적 불법행위 피해자의 마지막 구제수단이 국내 재판일 경우, 피해자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중시하여 예외적으로 국가면제의 적용을 부정해야 한다’며 인권 예외를 정면으로 인정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인정한 것이다.

 5.일본 정부, 언론, 야당의 비난

  일본 정부는 이 판결을 '국제법상 국가면제 원칙에 위배된다'고 비난했고, 많은 언론과 일부 야당 간부들도 이에 동조했다.
  스가(菅) 총리는 “국제법상 주권국가는 다른 국가의 재판권에 복종하지 않는다. 이것이 규칙이니까요”라고 말했다. 모테기(茂木) 외무상은 “국제법적으로도 양국 관계상으로도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이상한 사태”라고 말했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관습국제법인 국가면제 규칙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으며, '규칙이니까요'와 같은 고정적이고 영구적인 것이 아니다. 인권 예외에 대한 찬반양론이 국제적으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으며,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이상한 사태'도 아니다. 정부의 태도는 마치 19세기 절대면제주의의 망령이다. 인권 예외와 같은 복잡한 논점을 건드리지 않고, 국제법=국가면제라는 단순한 도식을 반복하며 한국은 국제법을 지키지 않는 국가라는 인상을 국민에게 심어주려 한 것 같다. (34)

 6. 1.8 판결의 선진성

   실제로는 이 판결은 아시아 최초로 인권 예외를 채택하여 인권 중심의 국제법 흐름에 부합하는 선진적인 판결이었다. 그 판결문은 아베 코우키(阿部浩己) 교수가 “인권의 보편적 실현을 지향하는 법원의 사고 태도는 일본에 몸담고 있는 사람에게는 눈부실 정도(35)라고 평할 만큼 인권감각이 넘쳐났다.
  다만, 1차 소송(2차 소송도)의 원고들은 모두 한반도에서 끌려가 각지에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강요당한 피해자들이고, 일본에 의한 불법행위의 일부는 한반도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불법행위 예외를 통해 국가면제를 배제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법행위 예외에 대한 판단을 하지 않고, 굳이 ICJ판결과의 대립을 무릅쓰고 인권 예외를 채택한 이번 판결은 선진적이면서도, 보수적인 판사가 담당할 경우 반대의 판단을 내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를 느끼게 하는 판결이었다.

 7. 세계 법률가 성명

  이에 한일 변호사, 법학연구자 20 명은 일본에서는 판결에 대한 조잡한 비난 담론을 극복하고, 한국에서는 2차 소송의 법원을 격려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서울중앙지방법원 판결을 지지하는 세계 법률가 성명'을 작성하고 각국 법률가들에게 찬동을 요청했다.

 “2021.1.8. 한국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일본의 불법행위 책임을 인정하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원고 12 명에게 손해배상금 지급을 명령하는 판결을 선고했다. 피해자 할머니들은 고단한 삶 끝에 마침내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일본 정부는 소송 절차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고, 항소 기간도 지나 판결이 확정됐다. 일본 정부는 이 판결이 국제법 규칙인 국가면제를 위반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의 반인도적 불법행위 피해자의 마지막 구제수단이 국내 재판인 경우, 피해자의 재판을 받을 권리를 중시하여 예외적으로 국가면제의 적용을 부정한 이번 판결은 국제법 위반이 아니라 발전하는 관습국제법에 부합하며, 국제법의 미래를 열어가는 훌륭한 판결이다.
 일본 정부는 스스로 상소 기회를 포기하고 확정된 판결을 즉각 이행해야 한다”

  2차 소송 판결이 4.21.로 지정되었기 때문에 급하게 집계하여 4.7.에 발표하게 되어 충분한 찬동을 받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럼에도9 개국 410 명(이중 일본은 192 명)의 법률가의 찬동을 얻을 수 있었다.

 8. 2차 소송 1 심 판결(4.21 판결)

  그러나 같은 해 4.21.의 2차 소송 1심 판결은 안타깝게도 앞서의 우려가 적중했다. 판결은 '최근 제시된' 독일 대 이탈리아 국가면제 사건 ICJ판결이 현재의 관습국제법을 구현하는 것이라며 일본의 국가면제를 인정하여 원고들의 청구를 각하하였다. 2012 년 시점에서 각국의 국가 실행을 세워봐서 상대적 다수로 관습국제법을 인정한 ICJ판결(그 집계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을 2022 년에 한국 법원이 관습국제법으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만약 다시 ICJ에서 다투게 되면 이번에는 한국 법원의 판결이 집계되어 상대적 다수로 결론이 도출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영원히 인과가 돌아다니며 국제법은 일체의 발전을 멈추게 된다. 이는 중학생도 이해할 수 있는 논리의 파탄이라고 밖에 할 수 없다. 또한 불법행위 예외에 대해서는 판단을 피한 ICJ판결을 한 걸음 더 나아가, 국내법에 불법행위 예외를 규정한 11 개국(당시), 이를 인정한 조약에 서명한 28 개국은 유엔 회원국 193 개국에 비하면 소수라며 불법행위 예외가 관습국제법임을 부정했다. 그러나 애초에 국가면제에 대해 아무런 입장도 표명하지 않는 국가가 대다수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유엔 회원국 수를 분모로 삼아 불법행위 예외가 소수라는 이 논리도 파탄 되어, 이후 서울고등법원 판결에서 적절하게 비판받게 된다.
  나아가 이 판결은 '무력분쟁 수행과정에서의 군대의 행위'가 되기 위해서는 전장일 필요는 없고, 전쟁이 진행되는 시기에 전쟁목적을 위해 행해진 국가의 행위라면 충분하다고 하였다. 이에 따르면, 전쟁시대의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피해자는 모두 소송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잃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ICJ는 바로 전장에서의 불법행위였던 독일을 피고로 한 8 건의 재판 사례 중 상대적 다수로 '무력분쟁 수행 과정에서의 군대의 행위에는 국가면제가 적용된다'는 관습국제법의 존재를 인정한 것이다. 이를 전장이 아닌 경우까지 적용한다면 ICJ의 인정 전제가 부정되는 것이다.
  그리고 원고들의 재판을받을 권리에 대해서는 2015 한일 '위안부' 합의가 국가면제에 의해 피해자의 재판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대체조치'라고 판시했다. 그러나 재판은 대심 구조 속에서 당사자가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 핵심이지, 당사자의 의견을 전혀 듣지 않았던 양국 정부의 합의가 재판의 '대체 조치'가 될 여지가 없다. 이를 '대체 조치'로 인정한다면 재판을 받을 권리는 정부에 의해 자유롭게 제한될 수 있게 된다. 더욱이 2005.12.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국제인권법의 중대한 위반 및 국제인도법의 심각한 위반의 피해자에 대한 구제 및 배상 권리에 관한 기본원칙과 가이드라인'은 피해자 중심주의를 천명하며 피해자의 의사를 반영한 구제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한국 정부의 부작위 위헌을 인정한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믿을 수 없는 정도의 오해도 있고,(36)、전체적으로 원고들의 청구를 각하하고자 하는 판사의 소원만을 앞세운 판결로, 상급심에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정도로 논리가 조잡했다. 원고 측은 당연히 항소하여 2 심인 서울고등법원에서 다투게 되었다.

 9. 새로운 판례

  원고들이 수년간의 법정투쟁을 전개하는 사이에 한국의 국가면제 연구는 획기적으로 진전되었다. 국제법학자들의 협조를 받아 대리인단은 수많은 해외 판례를 수집하여 주장을 전개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판례는 브라질과 우크라이나의 새로운 판례이다.
  ⑴브라질 '샹그릴라호 사건' 판결
   제 2 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3.7. 브라질 어선 샹그릴라호가 브라질 영해 내에서 침몰하여 승선한 어부 10 명 전원이 사망했다. 오랫동안 이 선박의 침몰 원인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역사가들의 노력으로 독일 잠수함 승무원의 진술서 등이 발견되어 독일 잠수함의 공격에 의한 것으로 밝혀졌고, 2001 년에 해사법원이 마침내 이 사실을 인정했고, 피해자 유족들은 손해배상을 요구하며 2008 년에 리우데자네이루 지방법원에 독일연방공화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1심 지방법원부터 보통법원의 최종심인 사법 고등법원까지 모든 법원은 독일연방공화국의 국가면제를 인정했고, 원고들은 10 년이 넘도록 패소만 거듭했다. 그러나 원고들은 포기하지 않고 2014 년, 독일에 국가면제를 인정한 판결이 브라질 헌법에 위배된다며 연방대법원(위헌심사권을 가진 헌법재판소)에 특별 상고했다. 연방대법원은 7 년간의 심리 끝에 6 대 5 의 다수로 원심을 파기하고, 전쟁범죄나 국제법상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국가면제를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판결은 “국가면제는 인권침해의 피해자들이 가해자의 책임을 추궁할 가능성을 부정함으로써 브라질 헌법, 세계인권선언, 국제인권규약에 보장된 사법접근권을 방해한다”며 판결 이유 중 한국의 1.8 판결에도 언급하며 독일의 국가면제를 부정했다.
   앞서 언급한 ICJ판결에서 샹그릴라호 사건도 군사적 분쟁 수행 중 군대의 행위에는 국가면제를 적용하는 취지의 국내 판례로 꼽혔다. 그 판결이 취소되고 인권 예외를 인정한 연방대법원 판결로 대체된 것이다.
  ⑵우크라이나 대법원 판결
   2022.4.14. 우크라이나 대법원은 2014 년에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군과 전투 중 사망한 군인의 유족이 우크라이나 법원에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러시아의 국가면제를 인정한 원심 판결을 취소하고 러시아 정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판결은 이 사건이 우크라이나 영토 내에서의 러시아의 불법행위로 인한 것으로 인정하고, 바로 '무력분쟁 수행 과정에서 군대의 행위'에 의한 것이지만 국제법상 확립된 '불법행위 예외'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10. 2심에서의 주장 및 입증

  대리인단은 국가면제 예외의 법리에 대해 상세히 주장하며, 위 판례를 인용하여 각국 국내 법원이 ICJ판결에 구속되지 않고 자국의 헌법질서에 따라 국가면제에 대해 판단하고 있다는 점, 국가면제에 대한 국제법이 계속 발전하고 있으며, ICJ가 집계한 판례 자체도 변화하고 있음을 밝혔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양현아 교수가 젠더 관점에서 피해 사실에 대해 증언하고, 2023.5.11, 필자가 1 심 의견서와 같은 취지의 증언을 하였으며, 또한 국가면제에 관한 기본 개념을 설명하면서 이 사건은 불법행위 예외에도 인권 예외에도 해당한다고 진술했다 .
  그리고 9.11, 원고 측은 영국 버밍엄대학교 알렉산더 오라켈라시빌리(Alexander Orakhelashvili) 교수의 의견서를 제출하고, 증언 영상을 법정에서 상영했다 . 동 교수는 강행규범은 국가면제를 제한할 수 있고, 성노예제와 같은 인권침해는 국가면제 대상에서 제외되어야 한다며, 한국 법원은 일본군 '위안부' 소송을 심리할 권한이 있고, 국제법상 장애가 없다고 밝혔다.

 11. 서울고등법원 판결

  2023.11.23.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1심 판결을 취소하고 일본의 국가면제를 부정하며 원고들의 청구를 인정했다. 판결은 원고들의 피해 사실, 절대면제주의에서 위 우크라이나 대법원 판결에 이르는 국가면제의 발전 역사를 상세히 인정한 후, 국가면제의 관습국제법은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동태적 성격의 것임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법정지국의 영토 내에서 인신상 사망이나 상해를 일으키는 등의 불법행위'에 대해 국가면제를 인정하지 않는 내용의 국가 실행이 다수 확인되고 있으며, 그것들은 주권행위와 업무관리행위를 구분하지 않고 고의적인 정치적 암살까지 폭넓게 적용되고 있다며, 불법행위 예외가 관습국제법이 되어 있음을 인정하였다. 또한 “불법행위 예외가 관습국제법이라 하더라도 ‘무력분쟁 수행과정에서 군대의 행위에는 국가면제가 적용된다’는 관습국제법이 존재한다”고 판시한 ICJ판결에 대해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기망과 강압에 의해 끌려간 곳은 무력분쟁지역이 아닌 한반도이기 때문에, ICJ의 논리에 따르더라도 이 부분은 일본군 '위안부' 사건에는 해당되지 않으며, 불법행위의 일부가 한국 영역 내에서 이루어진 이 사건에 대해서는 국가면제가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이 판결은 불법행위 예외로 국가면제를 부정하였기 때문에 '강행규범 위반', '최후의 구제수단' 등 인권 예외에 관한 요건에 대한 검토는 하지 않았다.
  이처럼 서울중앙지방법원 1.8판결이 ICJ판결의 논리를 일부 부정하고 인권 중심의 국제법 지향을 강하게 내세운 선진적인 판결이었다면,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국제법이 인권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ICJ판결과의 충돌을 피하고, 한국 영역 내 불법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의 구제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국가면제를 부정한 견실한 판결이었다.
  일본 정부는 이 판결에 대해서도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했을 뿐 상고하지 않았고, 판결은 확정되었다.

 12. 3차 소송(청주지방법원) 판결(37)

  2차 소송 승소 후 2024.1.27. 청주지방법원에 또 다른 소송이 제기되었다. 생전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임을 밝히고 1998년에 세상을 떠난 길갑순 할머니의 유족이 제기한 소송이다. 원고 측은 소송 제기 직후 송부촉탁 신청을 했고, 법원은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의 소송기록을 송부받았다. 이후 소장 송달, 수령 거부를 거쳐 공시송달이 이루어졌고, 이듬해 4.25. 판결이 선고되었다. 이러한 경위로 볼 때, 법적 판단은 2차 소송에서 제출된 증거에 의해 내려진 것으로 보인다.
  판결은 일본의 행위가 강행규범 위반임을 간결하게 제시하며 국가면제를 부정하고 원고에 대한 1억 원의 배상을 명령했다. 이러한 소송 경위와 판결 내용은 적어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의 국가면제를 부정하는 판단이 한국 법원에서 확고히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Ⅶ 소송의 성과

 이렇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일본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은 모두 원고의 승소로 끝났다. 일본에서는 “한국 법원에서 일본군 '위안부'가 소송을 제기하면 승소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많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특히 2차 소송은 1심은 말할 것도 없고, 2심 법원의 소송 지휘도 결코 원고 측에 호의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신청한 증거조사 채택에 법원이 난색을 표하는 가운데, 대리인단은 피해 사실부터 치밀하게 입증하고, 국내 국제법학자들과 협력하여 각국의 판례와 논문을 면밀히 검토하여 국가면제의 국제법적 법리를 정리하고, 해외 전문가들에게 협조를 요청하여 입증하고, 마침내 판사를 설득할 수 있었다. 판결 후 기자회견에서 L변호사가 ‘승소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는 소감을 밝힌 것은 이러한 어려운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대리인단도 예상하지 못한 기이한 판결이 나왔다는 취지로 편파적으로 보도한 일본 언론이 있었다).
 향후 대리인단에 의한 강제집행 시도가 계속될 것이다. 집행은 본안보다 더 어려울 것이지만, 그 성부와 상관없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일본국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권을 가진 법적 지위를 사법부에 의해 인정받아 명예가 회복되었다. 판결 선고 후, 아마도 의사표시가 가능한 마지막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가 휠체어에 앉아 두 손을 높이 들고 법원을 빠져나오는 모습이 이를 상징한다.
 또한 향후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판결 이행)이 구체적으로 밝혀졌다. 일본 국가에 의해 군인-군속으로 동원된 피해자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에서는 일본 기업만을 피고로 소송을 진행했던 강제동원 노동자(이른바 '징용공'들)도 일본 국가를 피고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Ⅷ 남은 과제

 그러나 전쟁-식민지 피해자들이 실효적인 구제수단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우선 가해국에 대한 집행에는 여전히 큰 걸림돌이 있다. 집행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승소해도 명예회복에 그쳐 실효성 있는 구제라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인권회복을 위해 소요되는 기간이 너무 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경우 처음으로 피해자가 나서기까지 46 년이 걸렸고, 일본 소송, 유엔 호소, 미국 소송을 거쳐 한국 소송에 이르는 사이에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세상을 떠났다. 강제동원 노동자들도 일본 소송, ILO 등 국제기구에 대한 호소, 한국 소송을 거쳐 마침내 가해기업에 대한 승소 판결을 받았지만, 가해기업의 이행거부에 시달리고, 일본 국가의 책임을 추궁하기 전에 의사 확인이 어려울 정도로 고령이 되어 지원자나 변호사로부터 격리된 상태로 윤석열 정부의 해결책(사실상 가해기업 구제책)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전쟁과 식민지배로 인해 심각한 인권침해를 당한 피해자가 이후 평생을 가해국의 책임 추궁에 매달려야 하는 현실은 불합리하며, 결코 실효성 있는 구제라고 할 수 없다.

Ⅸ 주권침해와 국가면제

 그런데 상기 우크라이나 판결은 ’국가면제는 국가의 주권에 대한 상호 승인 하에 인정되는 법리이며, 러시아 연방이 우크라이나의 주권을 부정하고 이에 대한 침략전쟁을 수행하는 경우 이 국가의 주권을 존중하고 준수할 의무가 없다’고 지적하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포함한 전쟁-식민지 피해자들은 애초에 피해자가 속한 국가의 주권을 침해한 식민지화와 침략전쟁 행위로 인해 인권을 침해당한 것이다. 타국의 주권을 침해하고 그 국민의 인권을 침해해 놓고, 정작 피해자가 소송을 제기하면 자국의 주권을 내세워 국가면제의 벽에 숨는 것은 명백히 부조리한 일이다. 따라서 국가의 강행규범 위반 행위가 식민지 지배나 침략전쟁에 따른 것이라면 국가면제를 배제해야 할 내재적 이유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우 인권회복의 이익과 국가면제의 이익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취지의 요건인 '국내 재판이 최후의 구제수단인 경우'라는 요건은 불필요하다. 자국에서의 소송은 집행의 어려움 등 결점이 있더라도 굳이 이를 초기 구제수단 중 하나로 선택하는 것을 금지할 이유는 없다. 이를 통해 입법적 해결 등의 조기 실현도 가능해질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Ⅹ 결어

 그리스, 이탈리아 피해자들의 투쟁이 한국 피해자들의 소송을 촉발시켰고, 1차 소송의 1심 판결이 브라질 연방대법원을 움직였고, 그것이 2차 소송의 서울고등법원을 움직였다. 또한 이 판결에 자극을 받은 중국 일본군 성폭력 피해자들이 산시성과 후난성 법원에 일본 국가를 제소했다. 앞으로도 세계 곳곳에서 전쟁 피해자, 식민지 피해자들의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한국 법원이 상반된 판결을 내린 것처럼 앞으로도 각국의 사법적 판단은 우여곡절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각국 피해자들의 투쟁이 공명하여 만들어낸 국가 중심의 국제법에서 인권 중심의 국제법으로의 큰 흐름을 막을 수는 없다. 그 속에서 인권회복을 국가면제에 우선하는 판단이 점차 정착되어 위와 같은 과제를 극복해 나갈 것이다.

각주

(1)전쟁 및 식민지 피해자를 원고로 하는 민사소송 건수.

(2)서울행정법원 2004.2.13 판결

(3)제 3 조 1.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
2. 1 의 규정에 의하여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은 어느 일방체약국의 정부가 타방체약국의 정부로부터 분쟁의 중재를 요청하는 공한을 접수한 날로부터 30 일의 기간내에 각 체약국 정부가 임명하는 1 인의 중재위원과 이와 같이 선정된 2 인의 중재위원이 당해 기간 후의 30 일의 기간내에 합의하는 제 3 의 중재위원 또는 당해 기간내에 이들 2 인의 중재위원이 합의하는 제 3 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 3 의 중재위원과의 3 인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에 결정을 위하여 회부한다.단, 제 3 의 중재위원은 양 체약국중의 어느편의 국민이어서는 아니된다.
3. 어느 일방체약국의 정부가 당해 기간내에 중재위원을 임명하지 아니하였을 때, 또는 제 3 의 중재위원 또는 제 3 국에 대하여 당해 기간내에 합의하지 못하였을 때에는 중재위원회는 양 체약국 정부가 각각 30 일의 기간내에 선정하는 국가의 정부가 지명하는 각 1 인의 중재위원과 이들 정부가 협의에 의하여 결정하는 제 3 국의 정부가 지명하는 제 3 의 중재위원으로 구성한다.
4. 양 체약국 정부는 본조의 규정에 의거한 중재위원회의 결정에 복한다.


(4) 반대로 강제동원 노동자(‘징용공’)에 관한 2018. 한국 대법원 판결 등에 대해 일본 정부는 2019. 한국 정부에 한일청구권협정 제 3 조에 따른 협의와 중재를 신청했으나 한국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양국의 거부로 이 조항은 사실상 사문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5) '위안부 합의'의 경위와 문제점에 대해서는 2017.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된 태스크포스 보고서 참조.

(6)2016.3.17. 정보공개법에 따른 정보공개청구로 공개가 거부된 부분에 대해 2016.3.17. 소송 제기. 2017.1.6. 1 심 판결은 '정보 비공개로 보호되는 국가의 이익이 국민의 알 권리보다 크지 않다'며 청구를 인정했으나, 2019.4.18. 2 심 판결은 '양국이 쌓아온 외교적 신뢰관계가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며 1 심 판결을 취소하고, 대법원도 2023.6.1. 2 심 판결을 지지하며 원고의 청구를 기각했다.

(7)2016.5.27. 소원 심판의 신청을 했으나 헌법재판소는 2019.12.27. '위안부 합의'는 비구속적 합의에 불과하고, 이로 인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권리가 처분되거나 한국 정부의 외교적 보호권이 소멸된 것이 아니므로 헌법소원 심판의 대상이 아니라며 각하했다.

(8) 2016.8.30. 제소. 1 심은 '위안부 합의'는 원고 등 개인의 일본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을 소멸시키는 것이 아니며, 피고는 외교에 대해 폭넓은 재량권을 가지고 있어 합의를 불법행위로 평가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9.12. 26. “피고는 위안부 합의가 국제사회의 보편적 원칙인 피해자 중심주의에 반하고 원고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준 점, 합의가 진정한 해결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을 위해 노력한다. 원고들은 소송을 취하한다"는 조정에 대신하는 결정을 내렸고, 원고와 피고 모두 기한 내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9) 2012 년 현재 11 개국. 그후 중국에서 국가면제법이 제정되었다.

(10)A・カッセーゼ「戦争・テロ・拷問と国際法」敬文堂(1992)177 쪽

(11) 제 53 조 일반국제법의 절대규범(강행규범)과 상충되는 조약
조약이 체결 당시 일반국제법의 절대규범과 상충되는 경우 무효이다. 이 협약의 목적상 일반국제법의 절대규범이란 어떠한 이탈도 허용되지 않으며, 동일한 성질을 가진 일반국제법의 후속 규범에 의해서만 변경될 수 있는 규범으로 국제공동체 전체가 수락하고 인정하는 규범이다.


(12) 水島朋則「主権免除の国際法」名古屋大学出版会(2012)176 頁以下参照

(13) 東京地裁 1963 年 12 月 7 日判決参照

(14) 京都地裁2009年10月28日判決等参照

(15) 大阪地裁2001年3月27日判決、広島地裁1995年3月25日判決参照

(16) 서울중앙지방법원 2008.4.3 판결,부산지방법원 2007.2.2 판결등 참조、

(17) 이하、독일의 보상제도와 독일에서의 소송 경위에 대해서는、山田敏之 「ドイツの補償制度」国立国会図書館 外国の立法34巻3・4号,1996年、葛谷彩 「ナチス時代の強制労働者補償問題」愛知教育 大学地域社会システム講座社会科学論集 49,2011年、山手治之「ドイツ占領軍の違法行為に対するギリシャ国民の損害賠償請求訴訟⑴」京都学園法学 2005年第2・3号、同⑵京都学園法学2006年第3号 참조

(18)일반 전쟁행위로 인한 피해자에 대해서는 1953 런던 채무협정에 의해, 독일이 통일되어 평화조약이 체결되어 배상이 최종적으로 해결될 때까지 해결이 유예되었다고 하여 방치되었다가 1990.9. 동서통일을 앞두고 독일에 관한 최종규정조약(이른바 2+4 조약)이 체결되자, 이를 런던 채무협정의 유예기간을 종료시키는 평화조약으로 인정하는 판결이 나오면서 각국 피해자들의 배상청구소송이 다시 불붙었다. 그리고 미국 캘리포니아주 법원에서 독일 기업을 상대로 한 집단 소송이 제기되었고, 이를 계기로 2000. '기억, 책임, 미래' 기금이 출범했다. 그러나 이 기금 역시 전쟁 포로는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특히 독일군의 포로가 되어 이송되어 강제노동에 종사한 이탈리아 군인 수용자들은 본래 받아야 할 포로로서의 대우를 당시에는 거부당했음에도 불구하고 포로라는 이유로 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19) 후게 ICJ 판결다수 의견 73,74 항

(20) 후게 ICJ 판결 칸사드 트린다지 반대의견 185~186 항

(21) 전게 주17 山手

(22) 전게 주17 山手 후게 ICJ 판결다수의견 27~29 항

(23) 후게 ICJ 판결 다수의견 30 항이하, 전게 주17 山手

(24)판결 영,불어 원문은https://www.icj-cij.org/en/case/143

(25) 전게 ICJ 판결 유수프 반대의견 7~9항

(26) 例えば、坂巻静佳 「国際司法裁判所『国家の裁判権免除』事件 判決の射程と意義」国際法研究 創刊第1号,2013年、前掲水島朋則「主権免除の国際法」153頁以下

(27) https://www.cortecostituzionale.it/documenti/download/doc/recent_judgments/S238_2013_en.pdf에 영어역

(28) 水島朋則「欧州における『過去の克服』の現在――独伊戦後賠償に関わる国際司法裁判所判決の履行を違憲とするイタリア憲法裁判所判決を素材として」法律時報第87巻10号, 2015年

(29) 1심에 관하여,山手治之「アジア人元慰安婦の対日本政府訴訟に関する米国連邦地裁判決」 (現代国際法における人権と平和の保証 東信堂,2003年

(30) 1952. 미국 국무부 법률고문 잭 테이트가 법무장관에게 보낸 서한. 국가가 절대면제주의에서 제한면제주의로 전환할 것을 통보했다.

(31) 소송에 관하여、松田幹夫「オーストリア共和国対アルトマン」獨協法学第101号,2016年
마리아 알트만이 그림을 되찾은 이야기에 관하여,エリザベートザントマン「奪われたクリムト」梨の木舎,2019年。단,법률적 설명 또는 그 번역에 난점이 있다.


(32) 戸田五郎「戦後補償に関する主権免除法の適用と政治問題の法理」国際人権№17,2006年

(33) 민사소송법 제194조 이하에 따르면, 외국에 송달하는 경우 동법 제191조의 규정(상대방 국가의 담당부서 및 재외공관을 통한 송달)이 주효하지 않는 경우 공시송달을 할 수 있다. 송달할 서면을 서기관이 보관하고 그 취지를 법원 게시판에 게시하면 2 개월 후 송달의 효력이 발생한다. 현재는 대법원 홈페이지에 게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34) 물론 일본도 절대면제주의를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2006.7.12. 최고재판소 판결은 제한면제주의(상행위 예외)를 채택하고 , 2010 대외국민사재판권법은 불법행위 예외를 명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또한 일본은 오래전부터 정부 해석으로 미승인국에 대한 국가면제를 부정해 왔다. 도쿄지방재판소 1954.6.9. 판결은 국가면제는 국가로서의 실체에 기인하는 것이라며 이 해석을 부정했지만, 정부는 이후에도 이 해석을 유지해왔고(「逐条解説 対外国民事裁判権法」14 쪽), 도쿄지방재판소 2022.3.23. 판결은 이 해석을 받아들였다. 이처럼 일본은 세계적으로 볼 때 국가면제의 예외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국가이다.

(35) 週刊金曜日2021年2月19日号

(36) 판결은 “헌법소원 사건에서 청구인인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기의 피고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 문제도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되는 분쟁임을 전제로 대한민국의 부작위의 위헌성을 주장하였고, 헌법재판소도 같은 전제로 대한민국의 부작위가 위헌이라고 판단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전술한 바와 같이 헌법재판소 결정에서는, '위안부' 문제도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었다는 일본 정부의 해석과 그것은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아니라는 한국 정부의 해석의 대립을 청구권협정 3 조에서 규정하는 협의, 중재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지 않은 한국 정부의 부작위가 위헌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따라서 청구인도 한국 정부도 헌법재판소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청구권 문제가 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될 분쟁이다”라고 '전제'하지 않았다. 이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일독하면 알 수 있다.

(37) 이 사건에 대해서는 언론보도, 한국 법원 홈페이지의 공개정보, 판결문에 의해 기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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